2017. 12 생각은 생각의 꼬리를 물고

글_신인철

 

part 6. 믿음이란 무엇일까?

 

당신은 ‘믿음이란 무엇일까?’라는 궁금증을 가져본 적이 있는가?

찬양 중에 ‘믿음이 모든 것을 이기네~♬’라는 가사를 가진 찬양이 있다. 나는 믿음이 모든 것을 이긴다는 가사 때문에 그 찬양을 좋아한다. 찬양을 부를 때는 ‘그렇지! 믿음은 모든 것을 이길 수 있어!’라고 생각하며 힘을 낸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는 ‘사는 게 힘든데 믿음이 모든 것을 이긴다는 것을 믿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잔인하게 이야기하면 나의 믿음이 작은 것이었다. 어쩌면 믿음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나의 믿음이 컸다면, 혹은 겨자씨만 할지라도 완전한 믿음이 있었다면 찬양을 부를 때나 일상생활에서나 똑같은 믿음을 유지했을 것이다. 하지만 믿음은 왔다 갔다 했고, 왔다 갔다 하는 믿음을 바르게 유지하려면 믿음이란 무엇인지 알아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믿음에 대하여 찾아보니 그냥 하나님을 믿는 것, 무슨 일이 있어도 믿는 것,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믿는 것 등등의 ‘믿음은 oo이야’라는 말은 많았다. 하지만 ‘믿음은 oo이다!’라고 정확한 답을 내린 것은 없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믿음은 형태가 없는 추상적인 단어 아닌가. 그래서 믿음을 이야기할 때는 모든 것을 참고 견디는 것으로 이야기하는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이해하기 힘들거나 어려운 상황들을 ‘믿음’이란 것으로 덮으려고 하는 것은 너무나 하수적인 생각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12월에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한다.

기독교인들에게 믿음을 요하는 상황을 생각해 보면, 항상 나쁜 상황에서 강요된다. 예를 들어 사업이 번창해서 돈을 많이 벌었다면, 번 돈을 이웃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는 것에 기독교인이라면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것이나 선교를 위하여 돈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모르는 이웃, 특히 자신을 종교적으로 핍박하는 이웃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돈을 사용한다는 것은 굉장한 믿음을 요구한다. 또, 어떤 문제로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응답이 빠르게 오지 않는다면 상당한 믿음이 요구된다. 이 외에도 수많은 상황에서 믿음을 끊임없이 요구한다.

그렇다면 수많은 상황에서 요구되는 믿음을 성경에서는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을까?

성경에는 믿음에 대한 이야기가 무수히 많이 등장한다. 그 중에서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의 장’이라고 할 정도로 믿음을 집중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히 11:1-2)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히 11:39-40)

 

그런데 신ㅊㅈ에서는 히브리서 11장 1-38절까지의 내용을 39-40에서 반전시키기 때문에 ‘믿는 자’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지키는 자라고 가르치고, 하나님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 자는 아무리 하나님을 믿어도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한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구원에 대하여 정확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6)

 

사실상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이다. 누구든지 어떤 형태로든 스스로 구원에 이르는 길은 없다. ‘왜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을 꾸짖으셨는가?’를 생각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열차에 오를 수 있는데, 이 열차에 오르는 것도 하나님의 주권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이단이라 일컫는 교파들이 자신들의 잘못된 교리를 믿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성도들을 교육하는 것, 잘못된 것을 교육받는 성도들을 보면 애절하다.

구원이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말에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이유는 구원받기 위해서 아닌가? 구원이 하나님의 주권이라 하나님을 믿어도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한다면, 하나님을 믿을 이유가 없는 것 아닌가?’라는 질문을 할 수가 있다. 이 부분은 좀 다른 시선으로 바라봐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일단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이유가 ‘구원을 받기 위해서’라는 전제가 잘못되었다. 구원은 하나님을 믿어서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구원을 받는 것이다. 그리고 믿음 = 구원이란 공식을 일괄적으로 적용하게 되면 이 공식에 적용되지 않는 사람들(하나님을 알기도, 듣기도, 보기도 전에 죽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시간이 없게 된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세상을 위해 독생자를 주셨는데, 구원받을 길을 만드시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초점은 조금 다르지만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께 물어본다.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가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요 9:2-3)

 

그 시대에 질병이나 가난이나 죄 때문이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예수님은 죄 때문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맹인에게 죄가 없는 것이 아니고, 맹인으로 난 것은 죄랑 상관없다는 말씀이셨다.

이런 문제는 신학적으로 상당히 난해한 질문이고, ‘하나님의 주권’이라고밖에 생각할 길이 없다. 그래서 내가 내린 믿음에 대한 결론은 믿음이란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것이다. 내게 주어진 길을 걷는 것, 그 길은 하나님의 주권으로 만들어졌고, 그 길에 하나님이 나와 같이 동행하신다는 것이다. 믿음에 대한 답은 개인적인 관해이고 신념이다 보니 내가 말하는 것이 정답은 아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고민하여 결론을 내려야 할 것이다.

나는 매주, 아니 매일 신앙고백을 한다. 그리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를 가슴 깊이 다짐한다. 그리고 쉽지는 않지만 작은 것부터 이웃 사랑을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믿음의 크기가 작으면 어떤가? 처음부터 큰 믿음을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믿음이라는 것은 지속적으로 성장시켜야 하는 것이기에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난 이후 두려움이나 불안감이 거의 다 사라졌다. 하지만 아직도 가끔씩은 ‘믿음이 모든 것을 이기는 것이 맞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어렸을 적에 비하면 믿음에 대한 강도가 훨씬 강해진 것을 느낄 수 있다.

정답은 없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전지전능하시고,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분이신데 정답 따위를 만드셨을까? 물론 하나님에게 대한 필수적인 것은 정답이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유의지를 주셨고 생각할 수 있게 해주셨다. 여러분도 믿음에 대한 각자의 결론에 도달하길 소망한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고전 13:11)

 

2017-12-09T01:41:25+00:00